그래서 제목은 과연 무슨 뜻인가 또 결말은 왜 그렇게 만들어논 것인가.
chapter 1. 제목의 첫인상
본 영화의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의 영화일지 도통 감이 오지를 않는다. 경로우대사상이 퇴조되어가는 현대사회를 질타하러 파고다공원과 종로지역 인근 노인분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다는 내용을 다룬 사회영화일지,아니면 설날 명절날 온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장기를 두던 중 수를 물러주지 않는 손자의 무개념에 야마가 돌은 할아버지가 온 가족을 소집하여 일대 전통문화와 삼강오륜을 학습케했다는 70년대 문화영화와 같은 사회계몽영화에도 어울릴만한 제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 영화는 노인공경에 대한 영화도 장기두기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이렇게 정한 코엔형제의 의도는 바로 제목이 노인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인은 분명 이 영화의 내러티브 상의 주체는 아니지만 코엔형제가 이 추적극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일종의 촉매역할을 하는 개체임에는 분명하다. 코엔형제는 노인이라는 단어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떤 물리적 법칙이나 아니면 도덕적 가치 그리고 여러분이 세워놓은 계획이나 아니면 여러분의 소원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가? 절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안다. 정의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절대원리이자 규칙이 되어야함은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시민들이 다 선하고 정의를 실제로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면 종로경찰서는 한국에서 가장 나이브한 경찰서가 되어야 맞다. 직장에서 일을 할때만 하더라도 모든 정보가 교류되고 앞서가는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대로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일을 잘할 수 있게 서로 서로 도와가며 오순도순 일을 하며 지낸다면 직장이라는 곳이 얼마나 인간의 정이 싹트고 한바탕 웃음이 넘쳐나며 집보다 더 있고 싶은 평화로운 곳이겠냐만은 직장생활하고 계신분들은 잘 공감하시겠지만은 온갖 눈치와 술수와 처세술 없이는 사실 낙오되기 십상인 곳이 대다수 일 것이다. 서점가에서 처세술관련서적이 언제나 십수년전이건 지금이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상기한다면 제목에서 노인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여실히 청진기대면 진단나오듯 딱 나온다. 한마디로 "Loser, 내지는 무기력하고, 세상의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여서 현실적으로 외면받는 사람들, 또는 무능하게 현실을 그냥 살아가기만하는 현대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단어이다. 단순히 나이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코엔형제는 이들이 살아갈만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상당히 염세적이고 어두운 세상관이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chapter 2. 실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진짜로 없다
이 영화의 화자인 토미리 존스가 연기하는 보안관 에드는 이제 은퇴할때가 다 된 퇴물이다. 세상사 찌들대로 찌든데다가 활력도 없고 무기력하기 까지하다. 단순히 나이가 많이 들어서 노인이 아니라 일의 재능면에서도 노인이다. 아울러 앞서 필자가 언급한 노인의 요건에 다수 해당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귀신같은 솜씨를 지닌데다 신속 정확하기까지한 안톤 쉬거를 무슨 수로 잡아내냐는 말이다. 여기서 본 영화의 엔딩이 설명된다. 사실 본 영화의 엔딩은 좀 특이하긴하다. 이러한 경찰추적극의 엔딩은 단연 악당과 경찰이 최후의 대결이 등장하여 일대 접전 끝에 악당을 생포하거나 사살해야함이 일반적인 영화의 컨벤션이었다면 이 영화는 안톤 쉬거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고 팔 밖으로 뼈가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고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갑자기 화면은 시간을 점프하여 사건을 해결하고 은퇴한 보안관 에드와 그의 부인과의 꿈에 관한 대화로 마무리된다. 뭔가 멋진 액션신과 더불어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최후의 대결이 나왔으면 보는 사람들도 더 크게 만족했을만한 영화지만 본 영화에는 없다. 왜 그랬을까? 코엔형제 같은 천재감독들이 그걸 모르고 실수한 것은 아닐까? 원작이 있다지만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클라이막스를 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본 칼럼의 대답은 "아니다" 이다. 코엔형제는 자신들의 의도한 주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엔딩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보안관 에드의 상황으로는 절대 안톤 쉬거를 잡을 수 없다. 영화에서보면 늘 쉬거가 한탕 일을 치룬 후에야 뒷북을 친다. 그 이후로도 수사를 활발히 진전을 시키지도 못하고 그 자신도 답답한지 이를 하소연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CSI:에 등장하는 호라시오 케인 정도는 되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지능범이다.
CSI: Miami 애서 호라시오 케인의 모습
Photo courtesy of CBS.
그러니 최후의 대결 같은 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서도 안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를 상징하는 보안관과 악의 상징인 쉬거의 대결으로 관객의 시선이 모아지면 본 영화가 쌓아온 주제가 무너지게 된다. 본 영화의 포인트는 대결이나 체포, 내지는 권선징악 같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쉬거처럼 악마와 같은 자들이 활개를 치고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에 있고 이러한 사회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본 영화의 본래의도이자 주제이기 때문이다.
안톤 쉬거가 잡힌 것은 분명하다. 초반부 내레이션에 전기의자 사형을 당했다고 에드가 밝혔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잡혔겠는가' 이다. 보안관 에드가 수사를 뛰어나게 잘해서 잡은것이 아니다. 쉬거는 뼈가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었기때문에 정상적 생활이 불가했을 것이고, 단연 보안관들의 포위망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싸우더라도 어디 대응이나 제대로 되었겠는가 말이다. 즉 안톤 쉬거를 잡은 것은 보안관의 "정의"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였던 셈이다. 교통사고만 안 일어났어도 쉬거는 활개를 치고 사람들 머릿통을 쏘러다니며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자체가 에드같은 보안관들보다 이런 쉬거와 같은 자들에게 더 좋은 공간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코엔형제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돌아가는 원리이다. 정의가 아니라 교통사고가 중범을 잡는 세상. 인간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나 함 생각해보자. 인간의 자유의지와 욕망이 인간행동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이들이 맞물려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인간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방치할때 생기는 무질서와 혼란을 억제하고 질서를 만들기 위해 법과 규율이 등장하고 교육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이나 규율이나 아니면 우리가 교육으로 배우는 정의라는 기준이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인간사회를 100%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인간행동에서 이기나 욕망은 주요한 동기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필자는 법과 규율따위의 불필요함을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하는 포인트는 인간행동의 기저에 깔린 욕망을 억제하는 사회적 도구가 있음에도 이들 욕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법이나 질서같은 사회적 도구는 중요성을 가진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기와 욕망은 그들의 억제도구를 간단히 뛰어넘어 여전히 인간사회의 주요한 원동의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만드는 원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종로경찰서가 서울에서 가장 빡신 경찰서가 되고 대다수의 직장은 지옥 내지는 살얼음판이 되는 것이다.
욕망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들이 만약 부재한다면 본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모스는 돈가방을 보고 지나치거나 시민정신을 발휘해 인근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고, 안톤쉬거는 직업정신에 투철하여 의뢰받지않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스에게는 돈을 꿀꺽 하겠다는 욕망, 안톤쉬거에게는 아무나 사람이면 다 죽이고싶다는 욕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만들며 그 행동들이 충돌하여 본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원시시대 이래로 인간사를 만들어온 그 실로 간단하면서도 무서운 원리를 코엔 형제는 실로 재미있는 한 추적극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chapter 3. 결 론
본 영화는 여러모로 관객의 예상을 비트는 영화이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예상을 비트는 데서 본 영화의 재미와 주제가 확보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 초반부 보안관 에드의 내레이션을 보면 헌트빌에서 체포하여 전기의자 사형을 시킨 흉악범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화면은 보안관이 안톤 쉬거를 체포하여 경찰차로 압송하는 화면이 나온다. 여기서 관객들은 대다수 기존 영화의 컨벤션에 익숙하기 때문에 쉬거가 체포된 후 내러티브가 플래시백하여 어떻게 쉬거가 체포되었는지 과정이 소상히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게되나 사실 이 체포화면은 이야기의 첫부분이었던 것이다. 쉬거는 경찰서에서 보란듯이 보안관을 잔혹히 죽이면서 관객의 기대를 깨뜨린다. 이런 전개방식이 주는 효과는 관객이 이야기의 예상대로만은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모종의 자극을 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그러한 예로 들만한 장면이 바로 델리오 모텔 장면이다. 주인공 모스는 도주의 도중에 델리오 모텔에 묵게 되는데, 주인공 모스는 돈가방에 센서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다만 관객은 이를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스펜스가 창출되며, 이 센서로 결국 안톤 쉬거가 이 모텔에 입성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의 뇌리를 강타하는 생각은 단연 "아 인제 모스 X됐구나" 일 터. 모스가 환풍구에 숨겨둔 돈가방과 씨름하는 사이 쉬거는 슬슬 자신의 고유무기인 가스총과 샷건을 들고 신발까지 벗는 용의주도함으로 무장하여 센서가 가리키는 객실로 이동하고 있다. 고도의 긴장의 서스펜스가 극에 달하는 순간은 단연 쉬거가 객실의 문을 가스총으로 따는 순간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 ! 객실의 주인은 모스가 아니다. 모스가 방을 옮긴 사이 다른 투숙객이 방을 잡았던 것이다. 이 역시 관객의 예상을 비트는데서 큰 재미 즉, 거성 박명수가 늘 제창하는 "빅 재미"를 얻는 일종의 트릭이자 테크닉인 것이다.
아울러 쉬거와 보안관 에드의 최후의 대결이 없다는 점도 관객의 예상과 장르적 컨벤션을 비트는 부분이고, 이 장면의 등장이 이 영화에서는 절대적으로 불가함은 이미 전 챕터에서 동해물이 마르도록 설명을 했으므로 이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줄이겠다.
도공들이나 그 수하의 제자들이나 사실 쓰는 재료는 똑같다. 그런데 명품이 나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손재주, 정성과 뚝심에 달렸다. 일류와 이류, 스승과 제자를 가르는 분수령은 이처럼 실로 간단하다. 간단하지만 개나 돼지나 아무나 막 가질 수 있는 덕목은 분명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없다>와 같은 명품영화를 개나 돼지나 다 만들어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촬영이 없는 순간에도 철저히 안톤 쉬거의 입장이 되어 자신 속에 내재된 어둠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연기자가 아닌 살인광 그 자체가 되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상의 연기를 선보인 하비에르 바르뎀과 그에 걸맞는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보여준 토미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 긴장속의 화면에 스며드는 느낌의 미니멀릭한 음악을 만든 카터 버웰, 영화에 컨셉에 적확히 부합하는 미장센을 창조한 미술감독 제스 곤처, 영화의 화면을 단지 보는 것 뿐만이 아닌 화면 자체를 감각하는 수준의 촬영을 선보인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율한 천재감독 코엔 형제와 이 명작을 빚어낸 제작진 모두에게 약소하지만 이 글을 헌정한다.
※ 개봉영화칼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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